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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래 이야기

조선의 역대왕의 업적 및 재위 기간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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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대왕이 누구이며, 조선의 역대 왕의 업적 및 재위 시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 역대 왕의 업적과 재위시기


1대 태조 (1392-1398): 7년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조선 왕조의 창건자이자 초대 왕으로, 고려 말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국가의 기초를 다진 인물입니다.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으며, 개경에서 서경(현재 서울)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전시 제도를 실시하여 농업 생산성을 높였으며, 노비 제도를 폐지하고 양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세습직을 폐지하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했습니다. 천민영농을 활성화하여 국가의 주요 산업인 농업 생산을 활성화하고 육성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신진사대부를 선발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겨 조선 초기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적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대 정종 (1398-1400): 2년 
 
조선의 2번째 임금인 정종(定宗, 1357-1419)은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위 계승권을 확보하였고, 그 결과 정종이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태종을 세제로 책봉하고, 재위 2년 만에 왕위를 태종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성곽과 무기를 수리하였고,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농토를 개간하고 저수지를 건설하였으며, 세금 제도를 개선하였습니다. 학문을 장려하고 서적을 편찬하였으며, 음악과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조선 초기 국가체제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3대 태종(1400-1418): 18년 
 
태종(太宗, 1367∼1422)은 조선의 3대 왕으로, 1398년부터 1418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올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의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습니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양전 사업과 호구 파악에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16세 이상의 남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가지고 다녔던 신분 증명패인 호패를 착용케 하는 호패법을 실시하였고, 주자소를 설치하여 계미자를 주조시켰으며, <동국사략>, <고려사>등을 편찬하는 등 문화발전에 기여했습니다.
 
 
4대 세종(1418-1450): 32년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은 조선의 4대 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훈민정음을 들 수 있으며, 백성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어의 발전과 문화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측우기, 혼천의, 앙부일구 등의 발명을 통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박연을 등용하여 아악을 정리하고, 궁중 음악을 발전시켰습니다. 농사직설, 칠정산 등의 책을 편찬하여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고, 세금 제도를 개선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였으며,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다양한 책을 편찬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습니다. 명나라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였으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성곽과 무기를 수리하였습니다. 법을 제정하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을 강화하여 법치주의를 확립하였습니다. 세금 제도를 개선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문화적 발전과 국가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5대 문종(1450-1452): 2년 
 
문종(1414∼1452)은 조선의 5대 왕으로, 1450년부터 1452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문종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위진법을 펴내고, 12사 체제의 중앙군사제도를 5사 체제로 바꾸는 등 국방력을 강화하였습니다. 고려사와 고려사 절요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측우기를 개발하고, 토지 개량과 종자 개량에 힘썼으며, 이 외에도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학문과 예술에 뛰어나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6대 단종(1452-1455): 3년 
 
단종(端宗, 1441∼1457)은 조선의 6대 왕으로, 1452년부터 1455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그러나 1455년 숙부인 세조(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단종은 명석하고 사리분별이 뛰어나며,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조선의 왕 중 최초로 궁궐에서 태어난 왕으로, 세종과 문종을 잇는 적통으로 정통성을 지닌 왕이었습니다.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자, 단종은 어쩔 수 없이 영의정으로 삼아 섭정을 맡겼습니다. 
 
7대 세조(1455-1468): 13년 
 
세조(1417∼1468)는 조선의 7대 왕으로,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조선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전인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하여 이후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이 널리 보급되고 사용되도록 하였으며, 신미라는 승려를 기용해 훈민정음을 이용해 불경과 불서들을 번역해 널리 유통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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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예종(1468-1469): 1년 
 
예종(睿宗, 1450∼1469)은 조선의 8대 왕으로, 1468년부터 1469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예종은 세조가 추진하던 경국대전 편찬을 계속 진행하여 완성 직전까지 이루었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 악공을 양성하고 악기를 제작하였으며, 문신 월산대군과 함께 <명사촬요>를 편찬하였습니다.
 
9대 성종(1469-1494): 25년 
 
성종(成宗, 1457∼1494)은 조선의 9대 왕으로, 1469년부터 1494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성종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국대전 완성·반포, 대전속록 완성 등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했습니다. 토지의 세습·겸병 및 관리들의 수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동국통감,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같은 서적을 편찬해 조선의 역사와 문학, 지리와 음악에 대한 자료들을 집대성 했습니다.
 
10대 연산군(1476~1506) 30년
 
어머니인 폐비 윤 씨가 성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를 복수하고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죽였습니다. 이로 인해 폭군으로 지탄받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에는 빈민을 구제하고, 사가독서를 부활하였으며, 경상 우도 지도, 국조보감, 동국 명가집 등을 간행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11대 중종(1506-1544): 29년 
 
중종(中宗, 1488∼1544)은 조선의 11대 왕으로 1506년부터 1544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중종은 연산군 때의 여러 가지 폐정을 개혁하기 위해 홍문관을 강화하였고, 문신들에게 월과, 춘추과시, 사가독서, 그리고 전경 등을 엄중히 시행하여 문벌 세력을 억눌러 새로운 왕도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교 주의적 도덕규범인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했으며, 현량과를 두어 유능한 신진 사림을 등용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상 정치를 시도했습니다. 남왜 북로에 시달려 왕권 호위 강화를 위해 정로 위를 설치했고 북로의 왜 변과 북방 야인의 침입으로 국방 상황도 복잡해져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를 설치했습니다. 
 
12대 인종(1544-1545): 8개월 
 
인종(仁宗, 1515∼1545)은 조선의 12대 왕으로, 1545년부터 1545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인종은 중종의 적장남으로 태어나면서 정통성이 있는 왕위 계승이었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뒤를 이을 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인종은 학문을 좋아하여 매일 밤 경연에 참석하여 신하들과 토론을 벌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세금을 감면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외교에도 능숙하여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일본과의 무역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13대 명종(1545-1567): 22년
 
명종(明宗, 1534∼1567)은 조선의 13대 왕으로, 1545년부터 1567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윤원형 일파 소윤이 윤임 일파 대윤을 몰아내어 사람들이 크게 화를 입은 을사사화사건이 있었으며, 1555년(을묘왜변)에 왜구가 전라남도 연안지방을 침범한 사건으로 인해 군사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관이었던 비변사가 상설 기구가 되었습니다. 명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어머니 문정왕후의 권력 개입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명종은 세금을 감면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외교에도 능숙하여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일본과의 무역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종은 재위 기간 동안 을사사화, 을묘왜변 등의 사건을 겪었으며, 질병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많은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14대 선조(1567-1698): 41년 
 
선조(宣祖, 1552∼1608)는 조선의 14대 왕으로, 1567년부터 1608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선조는 경제적으로 번성시키기 위해 사대유업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신분제로 인해 사회 안정을 이룩했으며 철저히 중앙 집권 주의로 통치했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허준의 <동의보감> 편찬을 지원하여 의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 외에도 인재 등용, 국방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붕당의 대립과 임진왜란 등의 사건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5대 광해군(1608-1623): 15년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광해군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공, 외교적 성과, 경제적 발전 등이 있습니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이지만 그의 업적과 역사적 의의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동법을 도입하여 세금 제도를 개선하고 궁궐 복원 사업을 추진하여 국가 인프라를 강화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 대신 전란을 수습하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나라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6대 인조(1623-1649): 27년
 
인조는 1623년 3월 13일부터 1649년 5월 8일까지 재위하였으며, 정묘호란(1627년) 때 후금(후에 청나라로 개칭)의 침략으로 조선은 큰 손실을 입었고, 결국 후금과 강화 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 이 조약은 조선으로 하여금 후금에 대한 사실상의 종속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병자호란(1636년) 때는 청나라가 조선을 다시 침략한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크게 패배했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조선은 청나라의 종속국이 되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17대 효종(1649-1659): 10년 
 
효종(孝宗, 1619∼1659)은 조선의 제17대 왕으로,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병자호란으로 인한 치욕을 씻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등 북벌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 유통을 활성화하였고,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까지 대동법을 확대 시행하여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효종은 재위 10년 만에 갑작스러운 병세로 사망하여 북벌정책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18대 현종(1659-1674): 15년 
 
조선 18대 왕 현종(顯宗, 1641∼1674) 때 예송논쟁으로 붕당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훈련별대를 창설해 군대의 규모를 늘리는 등 군비강화시켰으며, 경제발달을 위해 상업활동을 지원하고 광산 개발을 촉진시켰습니다.

 

 

 

 

 

 


 
19대 숙종(1674-1720): 46년 
 
숙종(肅宗, 1661∼1720)은 조선의 19대 왕으로,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조선의 전성기를 이룬 영조의 아버지로서, 그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숙종은 임금 중에서 두 번째로 긴 재위 기간인 45년 10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숙종은 단종을 다시 왕위에 복권하고,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을 소현세자빈으로 복권시켰으며, 큰 흉년과 가뭄, 우박 등의 자연재해로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청나라에게 쌀을 수입하는 등 쌀 수입의 첫 사례가 되었으며,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등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를 명확히 하고, 백두산이 조선의 영토임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20대 경종(1720-1724): 4년
 
경종(景宗, 1688∼1724)은 조선의 20대 왕으로, 1720년부터 1724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세제 개혁을 통해 세금 부담을 줄이고 경제 활성화를 도모했습니다. 국방력을 강화하여 국가 안보에 기여했으며, 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특히 문학, 예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많은 지원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시대의 문화가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21대 영조(1724-1776): 52년 
 
영조(英祖, 1694년 10월 31일(음력 9월 13일) ∼ 1776년 4월 22일(음력 3월 5일))는 조선의 21대 국왕(재위 : 1724년 10월 5일 ∼ 1776년 3월 5일)으로, 정치적으로 분열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서인과 남인 등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당파들을 조정하고, 균형 있는 정치를 이루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을 후원했으며, 이는 조선 후기 문화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농업을 중시하며 백성의 생활 안정에 힘썼습니다. 농업 기술 개선과 토지 제도의 개편을 추진하여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법률 체계를 정비하고 형벌을 완화하는 등의 법률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조선 사회의 법률 체계를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22대 정조(1776-1800): 24년 
 
정조(正祖, 1752∼1800)는 조선의 22대 왕으로,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재위했습니다. 농업 기술 개선과 상업의 활성화를 추진했습니다. 문학, 예술, 과학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국방 체계를 강화하여 외부 위협에 대비했습니다.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정치 체계의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사회 안정과 백성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며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23대 순조(1800-1834): 35년 
 
순조(純祖, 1790∼1834)는 조선의 23대 왕으로, 1800년부터 1834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천주교를 탄압하여 신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세도정치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농업 개혁과 상업 육성 등을 추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판소리와 탈춤 등 전통 예술을 장려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24대 헌종(1834-1849): 15년 
 
헌종(憲宗, 1827년 7월 18일 ∼ 1849년 6월 6일)은 조선의 24대 왕으로, 1834년부터 1849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사회적 계층 개선을 위해 노비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관리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했습니다. 통치 기간 동안 국가의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1 8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습니다. 
 
25대 철종(1849-1863): 14년 
 
철종(哲宗, 1831년 7월 13일(음력 6월 17일) ∼ 1864년 1월 4일(1863년 음력 12월 8일))은 조선의 제25대 국왕(재위: 1849년 7월 16일(음력 6월 9일) ∼ 1864년 1월 4일(1863년 음력 12월 8일)) 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며, 사도세자의 3남인 은언군의 서손자이자 전계대원군 이광의 셋째 아들입니다. 사회적 계층 개혁을 위해 노비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관리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했습니다. 통치 기간 동안 국가의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강화도령 철종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선지 철종은 재위 14년 때인 1863년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6대 고종(1863-1897): 대한제국 1897-1907 34년 9년 
 
고종(高宗, 1852년 7월 25일 ∼ 1919년 1월 21일)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조선의 26대 임금(재위: 1897년 10월 12일 ∼ 1907년 7월 19일)입니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해 나갔습니다. 특히, 과거제도와 공사노비제도 폐지는 고종의 가장 큰 결단 중 하나입니다. 대한 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황제국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으로 기록되지만 고종이 자주독립국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종은 개화와 현대화를 시도하였으나, 외부 강대국의 간섭과 내부 반대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27대 순종(1907-1910): 3년
 
순종(純宗, 1874년 3월 25일 ∼ 1926년 4월 25일)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제27대 왕입니다. 재위 기간은 1907년 7월 19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입니다. 한일 신협약은 불평등 조약으로 정부 각 부처 차관에 일본인들이 장악하여 차관정치를 시작하였기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허울뿐인 왕이 되었습니다. 기유각서로 인해 한국의 사법권을 강탈당하였습니다. 일제의 침략을 세계에 알리려고 한 헤이그 특사 파견은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였고, 이로 인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습니다.
 

어좌- 일월오봉도

 
 

2. 조선시대 왕의 순서 외우는 법

 


조선시대 왕의 순서를 외우는 방법으로는 '태정태세 문단세' 또는 '태종태세 문단세'가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외울 수 있습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선시대 왕들은 대부분 선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태조, 정종, 태종, 단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고종은 선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왕위가 계승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 뒤에는 '조', '종', '군' 등의 호칭이 붙는데, 이는 왕의 업적이나 신분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조'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에게, '종'은 보통 수준의 업적을 남긴 왕에게, '군'은 쫓겨난 왕이나 폭군에게 붙여집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역사와 업적은 한국 역사상 중요한 부분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영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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