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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래 이야기

이육사의 생애와 업적- 청포도, 교목,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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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고 이육사의 시 청포도, 교목, 광야에 담긴 역사의식을 알아보겠습니다.

 

 

 

 

 

 

1. 이육사의 생애와 작품- 청포도, 교목, 광야


 
이육사(李陸史, 1904년 4월 4일~1944년 1월 16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입니다. 본명은 이원록 또는 원삼이며 이후 이활로 개명하였습니다. 이육사는 대구 형무소 수감번호 '264'의 음을 딴 필명입니다. 이외에도 '李活' 戮史', '肉瀉' 등의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이육사는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고,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시에 나타나 있어 그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육사는 역사가 보다 완전한 것으로 진보, 발전한다는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민족 해방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래 지향적인 역사의식을 시에 담아냈습니다.
 

 

 

 

 

 


 
<청포도>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계에 대힌 소망을 담고 있으며, 작가나 시대에 초점을 맞춰 외적 요소를 더하면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청포도>, <교목> 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이육사

 

2. 이육사의 생애와 업적


 
이육사는 1904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입니다. 이육사의 형제로는 형 이원기, 아우 이원일, 이원조, 이원창 이원홍이 있습니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습니다. 이후 백학학교, 보문의숙, 교남학교 등을 다니며 항일 의식과 독립의지를 키웠습니다.
 
1920년, 예안보문의숙은 한학을 배우는 곳으로서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았으며,  일제 강점기 하에서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해  민족정신을 함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1923년 대구교남학교를 나왔으며, 대구교남학교는 1921년에 설립된 기독교 계열의 학교로,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 과정이 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지리 등의 교과목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민족정신을 강조하는 교육을 실시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육사 역시 대구 교남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는 1932년 의열단 단장 출신인 김원봉이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장제스의 지원을 받아 남경에 설립했던 군사간부양성학교입니다.
 
학생으로는 이육사와 윤세주 등이 있었으며, 오전에는 학과 교육, 오후에는 야외훈련이 실시 되었습니다. 6개월간의 훈련을 받은 후 국내에 잠입했으나 붙잡혔으며,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무장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했으며, 건강이 악화된 후에는 문인 활동에 전념하여 '절정', 광야', '청포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43년 이육사는 베이징에서 신문보급소를 경영하던 이상호의 집에 머물던 중 국내로 잠시 돌아왔다가 일경에 붙잡혀 베이징으로 보내져 일본 헌병대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폐병으로 몸이 약해진 상황에서 투옥으로 인하여 병이 더욱 심해졌고 결국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상하였습니다.

 

 

 

 

 


<광야>
 
1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이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2연: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3연: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현장인 '광야'의 과거, 현재의 모습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며 암울하고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3. 이육사의 시에 담긴 역사적 배경
 


이육사의 시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시 '청포도'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광야'에서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희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육사가 활동했던 시기의 주요 사건
 
1) 광주학생항일투쟁(1929)
2) 대구 격문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풀려남(1931)
3)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졸업(1933)
4) 서대문 감옥 수감(1934)
5) 일본 경찰에 체포(1934)
6) 체포 후 기소유예로 풀려남(1934)

7) 귀국 후 체포되어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샤관에 구금됨(1943)

8)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함(1944)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에서 이육사는 현실의 극한 상황속에서 극한 현실에 대한 초극 의식을 보여줍니다. 기-승-전-결의 한시적 구성방식을 활용하여 시상을 전개하며, 간경하면서도 단호한 문제를 사용하여 강한 인상을 남김니다.

 

이육사의 시는 1930년대 전반을 풍미하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적인 선비 의식과 한시의 영향으로 전통적 요소도 갖췄습니다. 죽음을 초월한 저항 정신과 시를 통한 진정한 참여가 돋보입니다.
 
이육사의 시는 모더니즘의 비인간화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하여 전통적인 시 형태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였으며, 현대시에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색채와 체질을 불어넣었고, 아울러 시를 통해 진정한 참여와 저항의 방법을 보여 준 선구적 시인이란 점에서 시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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