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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래 이야기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탄생에서 탄핵까지의 여정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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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탄생에서 탄핵까지의 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입니다. 그녀의 삶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깊이 얽혀 있으며, 정치적 성공과 함께 비극적인 사건 및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1. 박근혜의 생애와 성장



출생과 가족: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대구광역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제 18대 대통령입니다.

그녀는 1960년대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으나, 부모님의 요청으로 취소되었고, 1974년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교육자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나, 같은 해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피살되자 교육자의 꿈을접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 마저 서거하며 청와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하여 제 15대,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였습니다. 2013년 2월 부터 2017년 3월까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후, 박근혜는 5년 넘게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6·25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공산국가와 대치중인 상황에 퍼스트레이디가 공식석상에서 서거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이 높았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22세의 영애가 어머니의 자리를 메우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외신들의 관심도 매우 높았습니다.

1975년 10월 뉴욕타임즈는 국제사회에서도 화제의 인물이 되었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특집 인터뷰 기사를 실었으며, 이 내용을 75년 10월 16일자 경향신문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젊은 퍼스트레이디, 자신의 길을 개척"이란 제하로 리처드 핼로란 동경 지국장이 쓴 특별기사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사회활동사진들을 함께 게재하고, 그녀가 불과 2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침착, 성숙한 성품과 자기생활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누에고치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어 가는 일"이었다고 표현하였으며, 청와대에 들어온 민원을 점검하고 영세 기업, 소외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수행했고 아침마다 신문을 읽어 주며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박근혜는 2012년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 정치 입문과 성장


정치 입문 계기: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IMF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1월 2일 오후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IMF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날 평범하게 살던 삶을 두고 정치계에 발을 내딛은 당시를 떠올리며 “IMF 위기에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가만히 있는다면 후에 자책하고 스스로 떳떳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뭔가 기여를 하고 싶어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박근혜 위원장은 “IMF가 아니었다면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정치적 성장: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계기는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정치자금' 파문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천막 당사'를 발판 삼아 당 회생을 이끌면서라고 합니다. 이후 2006년 지방선거 때 면도칼 테러를 당하고도 "대전은요?"라며 선거 판세를 먼저 챙긴 일화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2011년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선에서 패배한 뒤 다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하고 이듬해 총선을 또 승리로 이끌었으며,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개정해 전임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였습니다. 



청와대

 

 

3. 대통령 재임기간 (2013~2017년)


취임 배경:

박근혜는 2012년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2013년 2월 25일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밝혔으며, 박근혜 당선자의 최종 득표율은 51.55%로 전체 유효투표수 3,072만 1,459표 중 1,577만 3,128표를 득표하였으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48.02%(1,469만 2,632표)를 득표하였습니다. 최종 투표율은 전체 선거인 4,050만 7,842명 중 3,072만 1,459명이 투표하여 75.8%를 기록했습니다.


주요 정책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주요 정책은 민생 경제와 신 성장 전략이었으며, 경제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를 설정하고 다양한 경제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국경을 넘어 많은 비즈니스 및 외교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경제 정책:

창조경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혁신 경제를 강조하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을 추진.
규제 완화와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했지만, 실질적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

외교 정책:

한미동맹 강화: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북 문제와 경제 협력을 도모.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외교 다변화를 시도.
대북 정책: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며 개성공단 폐쇄 및 대북 제재 강화.

문화와 복지:

문화융성: 한류와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문화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을 추진.
기초연금과 일자리 창출 정책을 도입했으나, 복지 정책은 제한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음.


 

 

 

 


4. 주요 사건과 법적 처벌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중 299명이 사망하였고 5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사고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고 현장에 방문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 작업을 지시하였으나, 초기 대응이 미흡하여 인명 피해가 크게 늘어났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여 해경 해체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유족들과 시민들의 분노와 실망감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이후 대한민국의 안전 대책과 재난 관리 체계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의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2016년):

2016년 2월 10일 대한민국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에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결정내렸으며, 다음날인 2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내리면서 대한민국 측 종사자들을 전부 추방하였습니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주)와 북한과의 합의로 시작되었으며, 2003년 6월 30일부터 1단계 330만 제곱미터가 개발이 착수되었으며, 2007년에는 1단계 분양 및 1단계 1차 기반시설이 준공되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70만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중 공장면적은 800만평이며, 생활, 관광, 상업 구역 등이 1200만평입니다.

 

 

 

 

 

 


탄핵 정국(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되었으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져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
-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과 권력 남용
-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 대처와 직무유기
- 탄핵 정국에서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며 국민들의 탄핵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으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법적 처벌: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2021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으로 석방됨.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에 직권남용, 뇌물수수, 강요 등에 대한 여러 혐의로 기소가 되었고 2018년 4월 1심에서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이 선고되었습니다. 이후 항소와 재판을 거치면서 징역형이 확정되었습니다. 2021 년 말에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단행 형 집행이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6. 주요 논란과 평가


최순실 국정농단: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고, 박근혜와 공모하여 권력을 남용한 사건.
국정 농단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고 대통령직에서 파면.

세월호 참사와 리더십 문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행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며 리더십 부재 논란이 일어남.

권위주의적 리더십:
언론과의 소통 부족, 일방적인 의사 결정 방식으로 인해 민주적 리더십의 부족을 지적받음.

 긍정적 평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됨.
외교적 노력: 미국, 중국, 유럽 등과의 외교를 강화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

부정적 평가
민주주의 후퇴: 비선 실세와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비판.
정책 성과 부족: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했다는 지적.

유산과 논쟁
박근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한 획을 그었지만, 탄핵과 국정 농단으로 정치적 유산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현대사 평가에서 복합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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