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건국의 대조영의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겠습니다.
발해(渤海)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던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한 나라입니다.
1.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게 된 계기
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반도 북부(신라 북부)와 러시아 연해주(현재의 프리모르스키 변경주) 및 하바롭스크 변경주 일부 등에 걸쳐 존속했던 다민족 국가였으며, 원래 국호는 진국(振國)이었으나 713년 발해(渤海)로 국호를 변경하였습니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계기는 고구려의 멸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면서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중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망명했습니다. 대조영도 고구려의 멸망 후 가족들과 함께 중국의 영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영주 지역의 지배자들의 억압과 차별로 인해 대조영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조영은 말갈족과 함께 동모산 근처에 수도를 정하고 발해를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대조영은 698년 동모산성에서 진국(훗날 발해)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국했으며 이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국명을 발해로 변경했습니다.
대조영은 어떤 사람?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구당서> 발해말갈전의 기록에 따르면,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고구려의 지파 출신이며, <신당서> 발해전의 기록에 따르면 대조영을 비롯한 대씨 왕족은 원고구려인이 아닌 속말말갈 출신으로 나중에 고구려에 복속하게 된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주지역에서 활동했던 7개의 별칭으로 불렸던 말갈족 중 송화강 유역은 속말말갈, 아무르강(흑룡강) 지역에는 흑수말갈, 백두산(백산) 지역은 백산말갈이라 불렀으며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은 고구려 지역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서로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 보고 기록을 유추해 보면 대조영의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숨결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웠으며 새로운 나라를 세워, 고구려의 영광을 다시 한번 되살리는 것이었으며 어둠 속에서 피어난 발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 생애
- 660년 백제에서 태어남
- 아버지 백제 군대의 장군, 어머니 왕족 출신
- 어린 나이에 백제에서 군 생활 시작, 전략적 사고와 용감함으로 유명
- 신라 군대에 붙잡혀 그들의 수도인 경주로 끌려감
- 신라 왕자와 친구가 되어 망명자 무리를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감
- 698년 한국의 북동쪽에 있는 광대한 영토를 포함하는 발해 건국
2) 업적
-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서 비전통적인 전술을 사용하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음
- 발해 건국 후 고구려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며 독자적인 발전을 이룸
-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합하여 나라의 안정을 도모함
-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함
-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라를 만들어 해외 무역과 외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함
발해의 영토는 현재의 북한, 중국, 러시아에 걸친 동북아시아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습니다.
중국 지린성 둔화시 성산자산성,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용천부 등의 유적이 있으며 이를 통해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발해 문화의 특징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중국의 문화와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발해의 문화적 특징으로는 불교문화, 건축물, 예술 작품, 언어 등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예술, 과학, 농업,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나며 중국, 일본, 신라와 활발히 교류하며 문화를 공유했습니다.
고구려 문화의 계승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면서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말갈의 토착 문화도 존중하여 복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상경 용천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는 큰 도시였으며 중국 지린성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혜공주 묘
정혜공주는 발해의 왕녀였으며 그녀의 무덤은 발해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며 무덤 속에는 벽화와 다양한 유물이 있습니다.
4. 발해와 주변국의 관계
발해는 주변국과의 관계가 매우 복잡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중국, 일본, 신라, 당 등과 교류를 하며, 특히 당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발해는 신라와 일본과는 갈등이 있었으며, 당과의 관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당나라
초기에는 적대적이었으나 이후 우호적으로 변하며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당나라로부터 인정받고 당나라와 활발한 교역을 진행하였습니다.
신라
대체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압록강 이남 지역을 두고 영토 분쟁을 벌였으나 문화적 교류는 지속되어 신라도를 통한 교역이 존재하였습니다.
왜(일본)
대체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고 활발한 교역을 진행하였으며 문물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나 일본에 많은 발해 사신단이 파견되었습니다.
거란(계)
대립 관계가 주로 서쪽 국경 지역에서 잦은 충돌을 빚었고결국 926년 거란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말갈족
초기에는 통합과 견제를 병행하였으나 점차 발해 문화에 동화되어 발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성장하였고 군사력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발해는 상황에 따라 유연한 외교 정책을 구사하며 실리적인 통상 관계를 유지하고 문화 교류를 통한 국제 관계를 강화하는 등 다원적 외교를 펼쳤습니다.
'역사와 유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의 생애와 업적 알아보기 (1) | 2024.11.11 |
---|---|
고구려 영토 확장의 대가, 광개토대왕의 생애와 업적 알아보기 (0) | 2024.11.10 |
벼(쌀) 농사의 유래와 역사, 맛있는 밥 짓는 법 알아보기 (3) | 2024.11.08 |
비단의 성분, 누에고치, 실크로드의 유래 알아보기 (2) | 2024.11.07 |
한국 전통 발효식품인 된장의 역사와 유래, 효능, 만드는 법 알아보기 (6) | 2024.11.04 |